날이 갈 수록 여행지에서의 숙소를 정하는 스킬이 늘고 있다. 3일이라는 짧은 휴가를 광주에서 보내기로 했는데 늘 1인실을 고집하다가 이번 여행은 컨셉이 사람들과 말 섞기였던지라 무려 6인실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하지만 누구와 어울릴 생각은 크게 없었다)
네이버 지도를 확인하며 이곳인가를 기웃거리며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속으로 짧은 비명을 질렀다. 오아시타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주거 공간과 닮았다. 한걸음.두걸음. 움직임에 따라 시선이 머무는 장면장면이 잘 이어붙인 필름 같았다. 현관문까지 이어진 그리 넓지도 길지도 않은 계단을 굉장한 공간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실내에 들어서 6인실까지 안내를 받으며 이동하는 동안 사랑받고 있는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진 공간일 것이다.
그동안 몇몇의 게스트 하우스를 괜찮은 곳이었다고 평가해왔지만 사람이 들낙거리는 한 어딘가 휑 한 느낌은 지울 수가 없었다. 공간의 주 목적이 주거가 아니고 숙박'시설'이기 때문에 공간이 운영된다는 개념으로 가꾸어지기 때문일 것인데, 이곳 오아시타는 달랐다. 집주인의 취향을 넘겨 짚어 볼 수 있는 인테리어도 눈길이 가고 반층을 활용한 집의 구조가 이 집의 내력을 알고 싶게 했다. 시선이 닿는 곳 마다 벽으로 막히지 않고 문이 있거나 복도로 연결되어 있어 '저 곳은 뭐하는 곳일까' 하는, 공포영화에서 절대 품으면 안되는 호기심이 일었다. 그런 장면에는 으레 평소 친절하던 마스터가 '저 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들어가지 마세요' 라고 차갑게 잘라 말하는 연출이 들어가지.
연속되는 탄성의 클라이막스는 문의 손잡이였다. 손잡이를 '잡고, 돌리고, 민다'라는 개념은 언제부터 생긴 걸까. 동그란 쇠물을 쥐는 손잡이가 아닌 이상 요새는 길다란 바 타입의 손잡이를 사용하는 듯한데, 이는 아래로 내리고 민다. 나는 아래로 내릴 때 부드럽게 덜컹이는 느낌이 좋다. 아무튼, 오아시타 방문의 손잡이는 단지 '쥐고 민다'. 잡는다기 보다는 솟아오른 버튼을 엄지손가락으로 눌러야 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쥐는 형태가 되는데 30년 동안 손잡이를 돌리며 살아온 손목의 노고가 억울해지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단정한 UX의 손잡이라니.
정말 마지막으로 오아시타의 화장실 타일까지 언급하기로 하자. 나는 이 타일을 보고 나중에 집을 지으면 꼭 반무광 타일을 사용하겠노라 맹세하게 되었는데. 화장실의 검정색 타일 표면이 반무광이라 조명이 반사되는 부분은 은광(요즘 화장품 트랜드인)을 뿜고 습기가 송글송글 맺히면 전체적으로 간접조명을 켠 듯 화장실이 아늑해진다. 뜨거운 물은 아직인데도 왠지 따뜻하다.
요즘 나의 테제는 <인사이드 현대카드>를 읽는 영향으로 '모던'이다. 책을 읽으면서 모던이라는 단어가 연상시키는 머릿속 기존의 이미지를 교체해 나가고 있다. 나는 모던함이 좋으나 모던스러움은 싫다. 모던함과 모던스러움을 가르는 기준이 디테일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차에 오아시타를 경험하게 된 건 행운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에 오아시타를 나서는데 초인종이 울렸다. 게스트 하우스인지라 벨을 울릴 사람이 없을텐데 알고보니 옆 집에서 김장을 했다고 김치를 한 포기 나누어 준 모양이었다.
참으로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던하우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