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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Up in the air


잠이 잘 안 오는 날에 괜찮은 영화 한 편은 마치 -나는 절대 따뜻한. 우유는 먹지 않으나 그런 효과를 발휘한다. 그런데 괜찮은 것보다 더 좋은 영화를 보게 되면 각성제 마냥 오히려 잠을 홀딱 달아나게 해 버리는데 오늘이 바로 그랬다. 이 영화 UP In the air.

이 영화 참으로 짜임새 있다. 일단 기계적으로 척척 맞아가는 것에 흥분을 느끼는 나는 항공사진과 컨트리뮤직의 편집이 어울리는 오프닝부터 마음이 설렜고 공항 검문대에서 뒷걸음질치며 구두를 벗는 디테일에도 놀랐다. 그리고 이 남자 일 년 365일 중에 320일을 비행기에서 보낸다. 지구와 달까지의 거리는 250만 마일인데 일 년에 항공 마일리지를 35만 마일 적립한다. 인간은 철저하게 외로운 존재임을 인식하고 수없이 떠다니는, 풀뿌리 삶이 아닌 풀 뽑힌 삶을 산다.

주인공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은 자른다. 그러니까 생전 처음 보는 이, 앞으로도 다시는 볼 일이 없는 어떤 이를 퇴사시키는 일을 대행해 주는 직업을 가졌다. 자기가 고용한 사람을 직접 대면하고 자를 수 없는 얼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여튼 반응은 다양하다. 일단은 우리도 어렵지 않게 상상가능한 범위에서 우는 사람도 있고 욕을 뱉는 사람도 있다. 식구들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하소연을 하거나 침착한 목소리로 앞으로의 계획을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걸 묻자면 돌아오는 대답은 이거다. 내일 다리 위에서 뛰어 내릴겁니다.
그러나 그의 일은 단순히 그 '명'을 전하는 것에 있지 않다. 소송을 거는 리스크에도 대응해야 하고 최대한 그들이 앞으로의 삶을 이어나갈 수 있게 조언해 주는 역할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앞에서 자신의 직업을 빼앗아 가는 이에게 내일 무얼하면 되는지 물어봤자 알 리가 있나.

메신져 역할을 하는 그의 업무에 변동이 생기기 시작한다. 인력낭비를 절감하기 위해서 화상대화로 해고를 통보하는 시스템을 웬 아가씨가 도입하기 시작한다. 시스템을 정상적으로 도입하기 전에 여자는 남자와 함께 파견 근무를 같이 간다. 여자는 같이 낯 모르는 사람들의 내일을 빼앗으러 다닌다. 현장은 만만치 않음을 체감하는 나날을 보내는 그러던 중 여자는 애인으로부터 한통의 문자메세지를 받게 되는데 이별 통보다. 그리고 정말로 다리 위에서 뛰어내린 여자가 신문에 기사로 실린다.

내일. 내일은 우리에게 참 중요하다. 실체도 없고 보장되어 있지도 않은 내일을 우리는 두려워하기도 하고 그것에 가슴 설레여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우리들에게 내일은 자신만의 내일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내일 또한 되기 때문이란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백 팩에 무엇이든 넣고 어깨의 멜빵끈을 느끼기도 전에 홀랑 다 태워버리라고 하는 주인공도 나중엔 백 팩에 담고 싶은 한 사람을 발견하지만, 영화는 그에게 끝까지 해피앤딩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 순간 인간이 모두 섬인 줄 알았던 그는, 자신만 홀로 섬이란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만 부조종사 없이 구름 위에서 비행기를 조종하는 외로운 사람이란 것을.

사랑은 이기적인 거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시작할 때는 서로 합의에 이르러야 성립이 되나 둘 중 하나라도 마음을 잃어버리면 그 성립조건이 파기 되기때문에 너무도 쉽게 부서지는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기적인 건 애초부터 사랑이 아니었음을 깨달아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