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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은 밤, 기린의 말

토일렛

 

영화를 보는 일은 어렵지 않으나 영화를 보기까지 마음의 준비랄지- 결단을 내리는 것은 어렵다. 쌓아두었던 숙제를 하나씩 해결해 가듯 쌓아둔 영화를 한편씩 보면 좋으련만, 마음엔 영화 한편도 들어가기 힘든 모양이다. 그동안 본 오기가미 나오코의 이전 영화들이 매우 좋았고 그래서 오늘은 토이렛을 보기로 마음을 먹었다. 이 감독의 영화는 탄탄하다는 인상을 주는데 그래서 한편을 다 보고나면 무언가 해소된 느낌을 받는다. 우연찮게 제목도 토일렛이다.

나는 음식을 먹는 것보다도 음식에 얽힌 이야기에 흥미를 느낀다. 조경란의 소설과 오기가미 나오코의 영화가 그런 면에서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들은 주로 음식을 만드는 과정에 주목하기 때문에 그리고, 음식은 집에서 만들기 때문에 가족에 관해 이야기 한다. 그것도 피를 나눈 가족의 정의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밥을 같이 지어먹기 때문에 생기는 관계를 그들을 가족이라 부르는 것 같다. 토일렛이 그랬다. 일본인 할머니를 가족이 아닐 수도 있다는 의심을 한 주인공이 오히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은 남이었는데 그래서 그를 통해 가족의 정의를 말하고자 했던 것 같다.

이 영화에서는 만두를 빚는 모습이 나온다. 교자라고 불렀으나 어쨋든 피를 만들고 소를 만드는 풍경이 나의 옛 명절을 떠올리게 했다. 구지 사먹어도 될 것을 다같이 두런두런 둘러앉아 만드는 이유가 만두를 먹기 위해서라 아니라 만드는 그 시간을 함께 하고자 했던 거구나. 새삼 깨달았다. 지금은 일년에 한 두번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만두를 빚는 건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아쉽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나의 집을 갖게 된다면, 친구들을 부르고 맛있는 것을 나눠먹을 수 있는 넉넉한 식탁을 가지고 싶다. 

 

교자를 먹어본 건 후쿠오카에서였으니 그건 진짜 교자였는데 윤성이가 꼭 가봐야 할 리스트에 있어서였다. 늦은 시간이라기엔 너무 늦은 자정을 넘은 시간이었는데 가게의 작은 입면에 비해 무척이나 깊은 실내를 따라 계속 들어갔었다. 요리를 하는 주방도 실내를 따라 한 켠에 길게 있어 조리과정을 다 볼 수 있었다. 그 근방은 가부키로 유명한 곳인 듯 가부키 화장을 한 배우와 주인 아줌마의 사진이 아주 아주 많이 있었다. 벽을 다 채우고도 모잘라 액자로 만든 벽인가도 싶을 지경이었다. 어느 사진은 젊은 주인 아줌마가 있다가도 어떤 사진은 늙어버린 하지만 그 쾌활함은 여전한 사진이 나란히 있기도 했다. 그러다 고개를 돌리면 이 가게의 내력을 몸소 보여주는 아줌마가 서 있었다. 한 눈에 봐도 우리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고, 한국말을 하는 점원을 불러주었다. 그곳의 교자는 굽은 새끼손가락의 모양을 하고 있었는데 20개가 기본이었던가. 20개의 새끼손가락이 서로를 겹겹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냥 튀김 만두였지만 아니다 그것은 교자였다. 내 머리속에 만두가 아닌 교자의 정의를 알게 해준 경험이었다.

 

교자의 분위기, 교자의 소리, 교자의 풍경을 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