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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다방

헌책방

나의 사생활의 역사에서 헌책방은 인천의 배다리 헌책방거리에서 시작한다. 초등학생 때 나는 교과서에서 모르는 것이 생기면 문제의 번호를 외워 집 근처 작은 서점에 가서 풀이를 하나씩 보고 오곤 했다. 학년이 올라갈 수록 모르는 것은 많아졌지만 전과를 산다는 것은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돈이 아깝기도 했고 전과는 교과서를 봐도 이해를 못하는, 그러니까 공부를 못하는 얘들이나 보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렇게 수재도 아니면서 모르는 것이 없다는 것 그것이 나의 쥐뿔 자존심이었던 것 같다. 

해가 더해 중학교 배치고사에서 나는 나의 자존심을 숫자로 확인 할 수 있었는데 그 이후 나는 30분 거리에 있는 배다리의 헌책방거리에 갔다. 배다리거리는 으슥했고 내가 전과를 샀음을 영원히 은폐할 수도 있을 것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헌책방의 느낌은 굉장했다. 지금으로 치면 호그와트의 도서관 같았다. 나는 오래된 책의 곰팡이 냄새에 취해 불순한 의도로 전과를 사는 대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공지영의 불순한 책을 샀다. 중학생의 나는 스티브 셀던의 책을 교과서 밑에 깔고 수업시간에 보다가 걸린 적도 있다. 선생님은 교과서의 글자보다 작은 소설을, 그것도 청소년 권장도서와는 거리가 확연히 먼 소설을 보는 나를 크게 혼내지 않고 책을 돌려주셨다. 친구들은 책보다 걸린게 뭐 어떠냐고 했지만 나는 속으로 성에 관한 노골적인 표현과 불륜으로 범벅된 내용 때문에라도 부모님을 모셔오라고 할까봐 마음을 졸였었다. 나는 모범생이었고 그는 과학선생님이었다. 읽어보지도 않은게 분명했다. 


고등학교 때는 문제집을 엄청나게 사다 풀었고 방학엔 도서관 죽순이로 지냈어서 나는 배다리를 점점 잊어갔다. 시에서는 배다리를 문화의 거리로 지정해 촌스러운 간판을 이리저리 매달았고 예산 집행이 끝나면 운영이 어찌되든 상관없다는 듯 거리는 전보다 더 황폐해졌다. 수능이 끝나고 난뒤 차곡차곡 쌓으면 내 턱밑까지 오던 수십권의 문제집을 팔까 싶어 배다리엘 갔다. 전성기를 잃어버린 폐허의 도시같았다. 문을 연듯 닫은 듯한 책방이 대부분이었고 열었다 싶어 들어간 곳엔 신경질적인 노파가 가져간 책들을 거칠게 거절했다.      

대학엘 갔고 나는 서울이란 곳에서 미술관과 갤러리, 소극장을 닥치는 대로 찾았다. 가보지 않은 곳, 정복하지 못한 곳이 없음은 그때의 또 다른 나의 자존심이었다. 지금에야 생각해 보는건데 그때의 내 교통카드의 승하차 데이터를 시각화해보면 뭔가 흥미로운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그렇게 꼬박 2년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나니 왠만한 곳은 다 가봤고 새로운 곳을 알게되더라도 그게 그거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못가본 곳이 있다면 별이 매겨진 호텔이나 근사한 식당처럼 단지 지불능력이 없어 못갔던 공간 뿐이다. 

강박적으로 발품을 팔아 공간을 탐험한 결과, 나는 어떤 공간인가 보다 공간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어떤 '경험'을 했는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버스를 타고가다가 아무렇게나 내리기도 했고 버스표지판을 보면서 시내를 걸어다녔다. 그러다 어느날 운명과도 같이 마주한 곳은 용산의 헌책방이었다. 지하에 있어서 뿌리서점이라고 지은걸까 매번 생각하지만 한 번도 할아버지한테 이유를 여쭈어 본 적은 없다. 여름엔 더위를 피하기에 그만이고 겨울엔 너무 추워 손이 시뻘개진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믹스커피를 주시는데, 커피를 먹지 않고는 한 명도 보낼 수 없다는 의지라도 있으신게 분명하다. 오늘은 커피를 피했다! 고 방심하는 순간 계산할 때 들키고 만다. 그러면 그 자리에서 원샷하고 나와야한다.


나는 뿌리서점에 책을 사러가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책의 냄새를 맡으러 가고 책을 읽던 이가 무심결에 적은 쪽지, 책 사이에 끼워져있던 아주 오래된 엽서 따위를 찾으러 간다. 그리고  수첩의 커버로 만들 표지가 예쁜 바다건너온 책을 찾으러 간다. 책등을 보고 눈길이 가는 책을 두 손가락으로 집어 손안에 쥐는 순간 만큼은 복권을 긁는 기분이다. 타이포그래피나 편집디자인에 관심을 갖게 된 것도 여기서 독일권 책을 수집하면서였다. 미국의 책들은 유치했으나 독일의 책들은 제목만 썼을 뿐인데도 세련됐다. 책의 콘텐츠를 고려해 폰트를, 종이의 재질을 디자인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마음에 드는 레이아웃을 수첩에 그려두었다가 패널을 만들고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한번도 수험서를 사러 뿌리서점에 간 적이 없는데, 오늘은 건축기사 책을 사러갔다. 사실 이상할 거 하나 없는데, 슬펐다고 해야하나. 더럽혔다고 해야하나. 내가 처음으로 헌책방에 갔 일을 생각나게 했다. 나는 그동안 스펙에 연연하지 않았고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자격증에 허덕인적 없이 순수하게 공부했다. 알아간다는 과정이 너무나 즐거웠다. 그러나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결혼할 수 없는 것처럼 즐거웠던 과정만으론 취업을 할 수 없더라. 

그래서 기사 책을 사러 갔는데 할아버지는 (여전히 나에게 커피를 맥이셨고) 기사 시험 붙고 좋은 일 많이 하는 사람이 되시라. 하셨다. 그러게 아무렴 어떠냐, 평생 수첩 커버 구하러 가는게 이상하지. 언제나 그곳에 있어 내가 변해간다는 것조차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거 이거야말로 대학 7년의 결과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