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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물의 언어

할머니의 화분

스물여덟이 되는 해는 삶이란 이런거구나,를 실감하면서 시작되었다. 죽음에 관한 몇 쉽지 않은 일들이 한 두달을 간격으로 일어났고 하나가 아물면 또 다른 하나가 고개를 내미는 식이었다.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날들엔 나의 불안한 미래를 생각했다. 죽음과 아주 먼, 오히려 매우 삶에 가까운 취업에 관한 생각들이었지만 확신없는 미래의 삶이란 죽음과 그 심상이 별반 다르지 않았다.


스물 여덟의 나의 명절은 죽음과 삶의 모습이 너무 명백하게 드러나 잔인했다. 한쪽 방에선 구십이 넘은 부모의 내일을 걱정하고 한쪽 방에선 십육개월 된 아기의 하루가 다른 오늘을 즐거워했다. 이쪽 방에서 우는 사이 건너가 저쪽 방에서 웃어야 했다. 누군가는 더이상 오지 않았고 누군가는 새로이 왔다. 친척이라지만 가깝지 않은 사람들과 새 생명의 탄생에 휩쓸려 경탄하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차안에서 오지 않은 누군가를 그리는건 오롯히 나의 몫이었다. 


슬픔을 그리움에 섞어 이를 나눌 수 있는 가족을 이루고 싶다. 무 대가리를 물 받은 접시에 담고 자라나는 잎파리를 키우는 할머니를 기억하는 사람이, 바로 나의 가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