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물의 언어

도널드

도널드 덕; 어떻게 읽을 것인가/
초등학생 때만 해도 일요일 아침 8시면 디즈니 만화를 본다고 유난히 일찍 일어났다. 일요일 같이 늑장 부리며 잘 수 있는 유일한 날임에도 미리부터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서 기다렸던 기억은 내 또래의 친구들은 다 그러했으리라. 그때 보았던 영상이 위와 꼭 같은 것이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디즈니 만화란 것은 언제부턴가 좋아하지마는 않게 되었다. 특히, 포식자의 위치에 있지만 늘 당하는 톰과 명민한 제리의 구도는 허둥지둥 도망 다니는 제리를 편들어야 할지 그러고도 늘 당하는 톰을 불쌍히 여겨야 할지 선과 악의 구도가 뚜렷하지 않았다. 이 둘의 못마땅함은 계속 이어지는데 망치를 휘두르며 시작하고 폭탄을 설치하고는 끝나버린다. 이 캐릭터들의 모습만 바꾸어 심슨에선 이치와 스크래치로 나오는데 이들을 문제 삼아 까발리는 에피소드는 참으로 '심슨시리즈' 답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읽게 된 /도널드 덕/은 흥미로움 그 이상이었다. 이 책은 칠레에서 불에 태워버렸을 정도로 그 파장이 컸다. 출판하는 과정도 쉽지 않아 만화의 도판을 싣는데도 법정 공방이 오갔다. 자회사를 비판하는 책에 흔쾌히 도판을 넘겨줄 회사는 없겠지만 결국 출판되어 나온 것을 보아하니 저자가 승소한 것이라 생각된다. 이 책은 대중문화의 문제점을 꼬집으면서 대중화된 어린이 만화에서 보이는 문제점을 지적한다. 대중문화는 자기를 둘러싼 현실을 시각화할 필요가 있는 현대인에게 여러 문제를 견뎌나갈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왔다. 그리하여 적극 참여하지 않고도 지식을 제공받을 수 있게 되었는데 많은 사람이 다양한 주제를 접하게 된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 볼 수 있겠으나 반대급부로 문화엘리트를 생산한 측면이과 어린이의 문화를 어른이 창조하는, 곧 전문화 과정의 일부가 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하여 디즈니가 보여주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의 6가지 디테일이 등장한다. (정확히 저자가 6개라고 한 것은 아니지만, 종합해보자면 그러하다.)
1. 디즈니 세계에선 아버지란 존재가 등장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은 근거에 의한 혈연관계를 보여주지 않는다. 삼촌과 숙모의 관계가 있을지라도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권위(권력)만 누릴 뿐 의무는 보여주지 않아 편재와 침투를 위한 완전한 조건인 셈이다. 아동문학은 으레 아버지의 대용물로 적시되지만, 아버지가 부재한 상황의 가부장적 온정주의는 자율적인 유년기를 통제하는 수단일 뿐이다.
1. 여성은 언제나 남성에게 종속적인 존재로 등장한다. 그들은 교태의 힘으로 살아가며 그것은 만화에서 여성을 지배하는 행동양식으로 나타난다. 백설공주가 아니면 마녀이고 소박한 스튜가 아니면 마법 독약을 만든다. 여성들은 끊임없이 구애받으며 끊임없이 유예되는 성적 대상이며 이는 성을 거부하는 디즈니세계에서 유일하게 성으로 점철된 제약된 '성'을 보여준다.
1. 주인공들은 노동 보단 모험을 하고 이로 인해 황금을 얻는다. 그들은 늘 제 3세계 국가를 찾아가며 '고귀한 야만인'을 등장시킨다. 여기서 언뜻, 만화가 '고귀한 야만인'에 대해 취하는 시각은 어린이 독자의 관점을 취했으리라 생각되지만 야만인은 곧 현실에서의 어린이고, 어른의 역할을 맡은 어린이가 등장할 뿐이다. 그리하여 현실의 어린이가 얻는 교훈이란 이런 것이다. 약삭빠른 존재가 되어 이득을 취하거나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되거나.
1. 만화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직업은 모두 3차 산업에 종사한다. 바로 만화가 그렇듯, 서비스업이다. 이 세계에선 생산 과정이 철저히 무시되며 간혹 제 3세계에서 발견되는 황금과 고대유물은 현실 밖의 이야기임을 안다. 이는 아버지의 기원과도 같은, 생산과정과 연결시켜주는 것이 없는 노동을 철저히 배제한다. 디즈니 만화 속에서 뿐만 아니라 디즈니社의 노동자들도 같은 처우를 받았다. 디즈니와 계약하는 그 순간 작가는 철저히 익명의 디즈니의 소유물이 되며 그 많은 수익을 올렸음에도 작가 이름을 알게 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1. 도널드 덕의 노동은 유희에 가깝다. 힘든 노동은 수동적이고 압박감으로 가득 찬 것임을 보여주며 늘 황금을 획득해 오는 모습은 실제적 삶의 구체적 기반에서 산다는 인상을 주지 못한다. 바로, 도널드가 보여주는 노동은 노동의 가치와 노동이 만들어 내는 가치 사이의 즉 잉여가치를 숨기기 위해 고안된 장치이다. 즉 이곳은 생산과 관련된 노동이 없다.
결국, 환영과도 같은 리듬에 따라 고난과 보상이 되풀이되는 가운데 지배자의 삶을 살면서 역설적이게도 피지배자를 대변한다.
1. 디즈니에는 역사가 없다. 모든 에피소드는 분절되어 있고 곧장 잊어버리는 '조두'의 기질을 다분히 지닌 캐릭터들은 그 많은 황금을 획득했어도 끊임없이 욕망한다. 만약 디즈니에 자본과 잉여가치의 축적과정을 보여주는 역사가 있다면 스크루지는 진작에 부자가 돼야 하지만 스크루지의 문제점은 돈을 벌어들이는 것에 있는 게 아니라 단지 계속 얻고 싶어하는 것이라는 점에 있다. 스크루지의 이러한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탐욕이 그가 가난한 것처럼 보이게 할 뿐이다.

오직 오락만이 사회적인 근심과 갈등에 잠겨 있는 인간을 해방시킬 수 있다는 원리에 기반한 현대의 대중문화 개념이 자라나던 당시, 사람들의 욕망을 이용해 먹고 현실에 뿌리내리지 않은 상징들로 희석시킨 것은 온통 거품투성이의 코카콜라시대의 오락세계이다. 칠레에서 이 같은 책이 나와 반향을 일으킨 이유도 미국식 삶의 꿈을 주입한다는 데 있었다. 디즈니의 만화를 수입하는 제 3세계 사람들은 미국인들이 바라보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나라를 바라보게 되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노동도 없고 아버지도 없고 역사도 없는 만화의 세계를 단순한 오락거리로 보기엔 조기교육이 잘못 되도 너무 잘못 된 점을 우려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