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언어

진공청소기

Ramlog 2013. 2. 2. 14:03

9시 엄마의 아침 밥, 그리고 대략 12시 이전까지의 청소는 토요일 오전의 관례와도 같다.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빠는 안방부터 청소기를 돌린다. 이어 아빠가 서재를 청소하는 동안 나는 안방의 바닥을 닦는다. 먼지를 빨아들이고 걸레질을 하는 순서를 따르기 위함이다. 하지만 그 다음 차례인 거실은 다른 방에 비해 훨씬 넓기 때문에 나에게 텀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때 나는 유리 닦는 걸레로 일주일 동안 우리 가족이 온갖 곳에 묻힌 손자국을 지운다. 거실과 부엌이 끝나면 내가 청소기를 물려받아 나의 방을 청소한다. 그러면 이제는 반대로 아빠가 거실을 닦고 내가 다시 돌려받아 내 방을 닦고 정리하면 청소가 끝난다. 

아빠와의 청소 호흡?을 맞춘지 몇 년이 되어가지만 하면서도 팀워크가 꽤 좋다는 생각을 한다. 별일 아닌데도 그냥 기분이 좋다. 청소를 하며 들인 수고에 비해 눈에 띄게 깨끗해졌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청소를 하는 활동이 내 기분을 더 깨끗하게 만드는 것 같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청소기를 돌리면 싫었다. 싫었다는게 명확히 설명할 수는 없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불안감도 들었고 소리도 견디기 힘들고 그랬다. 역시 설명이 안된다. 청소하지 않는 나에게 엄마 대신 진공청소기가 화를 내는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요새 엄마가 그런다. 엄마가 출근하기 전에 청소기를 돌리면 엄마가 싫어한다. 왜냐고 물으면 아 글쎄 싫댄다. 역시 그런것일게다. 내가 어렸을 때 느꼈던 그 기분. 

어쨌든 우리집 청소기는 얼추 십년은 넘은 것 같은데 그때 당시엔 꽤 브랜드 뉴-한 제품이었다. 독일제라고 들었고 파스텔 톤의 하늘색이다. 청소기는 회색이라고만 알던 나에게 이런 산뜻한 색의 청소기는 청소기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어디 안보이는 창고에 보관하기 보다 거실 한켠에 장식품처럼 세워두고 싶었다. 하지만 이녀석이 내는 소리를 들으면 영락없이 청소기인데 오늘은 문득 첫번째 진공청소기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궁금했다.


사진 하단에 모이는 마차 같은 것이 1900년 초의 진공청소기라고 한다. 말이 끌고 다녔으니 마차가 맞긴 하다. 저렇게 진공청소기가 필요한 곳에 가 서비스를 해주고 4달러를 받았다고 하는데 기사의 레이아웃이 참으로 재치있다. 엄밀히 말해 사진의 저것은 먼지를 빨아들이는 원리가 아니라 압축 공기를 뿜어 먼지를 날리는 식이었다고 한다. 진공청소기의 종류에도 네가지가 있고 방식에 따라 특허도 제각기 받아 어떤 것을 '원조'라고 하는 것에는 의미가 없지만 Hoover라는 사람이 우리가 사용하는 진공청소기를 만든 사람이다. 

그래서 Hoover라는 영단어는 '진공청소기로 청소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